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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늘어 가는데...

밝은집 2020.12.17 22:28 조회 수 : 1

오늘,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량리 전철역에서 내려 기차를 타려고 나갈 때였습니다.
어르신 세분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시고 저는 그 뒤를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두툼한 잠바를 입은 덩치 큰 청년이 나를 밀쳐 옆으로 보내고 어르신 가운데를
빠른 동작으로 가르고 지나가며“길을 막고 다니고 있어” 맹랑한 말투와 쏘는 시선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비틀거리며 밀쳐진 어르신들은 놀라서 말씀도 못하시고 나를 포함한 주위에 다른 사람들은 잠잠히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청년은 유유히 가버렸습니다.
한 십년 전 쯤 인가.
모 열차 역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출구에 서있는 직원에게 승차권을 내고 나가려고 줄서 있을 때 초췌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직원 앞에 서서 그때서야 등짐 속에 고이 넣은 차표를 꺼내려고 하시니까 직원이 할아버지를 옆으로 밀쳐내어  쓰러지셨는데 빨리 차표를 주지 못한 죄로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땅을 짚고 일어나 차표를 꺼내셨습니다.
나는 흥분했습니다. 직원에게 소리 소리 지르며 따졌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옷이라도 잘 입으셨다면 이렇게 하셨겠어요?“
나는 가난하다는 것이 무례의 이유가 되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이어도 이렇게 쓰러뜨릴 수 있어요?”
노약하다는 이유로 당하는 거친 횡포에 속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동행자가 있어도 이렇게 밀쳐버렸겠어요?”
보호자 없이 외출하신 할아버지의 외로운 입장이 가슴 아팠습니다.
“ 빨리 용서를 비세요! 승객에 대한 서비스의 기준과 지침도 없어요?”
그때서야 주위에 분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표 받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노인께 그렇게 한 것은 지나쳤다고.
직원은 어르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서슬 푸른 나에게 사과를 했었습니다.

오늘 나는 나이와 더불어 변해가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의분에 둔감해지고 용기보다는 뒷걸음으로 자신의 보호를 우선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집에 와서도 맘이 편치 않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슬그머니’‘ 적당히’
‘그래봤자’하면서 비겁해 질까요?  
다시 맘을 추스립니다. 자칫 하다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못 본체 눈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구경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수는 없지요.
물론, 이제는 흰 머리칼이 자꾸 늘어나니 조금 점잖게 소리를 낮추어야겠습니다.
어르신에게 무례하고 횡폭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용기를 잃지 말고 꾸짖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원장 전도사님은 “그러다가 손이라도 대면 어떡하느냐”고 하지만 의분을 느끼지도 못하고 ‘벙어리 개’같이 듣기 좋은 말만하고 꽃밭 길을 골라 가는‘사랑 많은 목사’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늘어 가는데, 알고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왜 이런 세상이 되어갈까요?
그 청년이나 그의 부모님은 주일날 혹시 교회를 다니는 ‘교인’은 아닐까요?
‘악인을 의롭다하며 의인을 악하다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움을 받느니라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
             잠언 17장 15,26절 말씀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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